[논평] 언제까지 재판부는 남성 가해자에게 감정이입 할 것인가?

논평 | 제주녹색당 | 2021-01-18

언제까지 재판부는 남성 가해자에게 감정이입 할 것인가?

 

2021년 1월 14일, 명품 옷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여성을 차량 트렁크 등에 감금하고 폭행하고 나체사진까지 촬영한 20대 남성들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최씨는 2020년 10월5일 20대 여성 A씨를 자신의 거주지에 감금하고 둔기로 폭행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현금을 빼앗았으며 10월8일에는 피해자를 차량에 태워 옷을 벗기고 트렁크에 가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나체사진까지 촬영했다. 공소사실에 비춰 피해 여성은 살해의 두려움 속에서 감금 폭행 성폭력을 당했다. 상식적으로도 죄질이 가볍지 않다. 그런데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특수중감금치상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소기소 된 주범 최모(27)씨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모(22)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불구속기소 된 정모(22)씨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양모(25)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구속기소 상태였던 가해자들은 즉시 풀려났다.

이와 같은 판결에 제주 녹색당은 분노를 금치 못하며 다음과 같이 우려하는 바이다. 
이번 판결은 여성폭행에 관대하고 남성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 사법부의 인식을 다시 드러내며 여성혐오를 심각하게 부추겼다. 법원이 밝힌 형량 사유는 피해자와의 합의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해자 최씨는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집에서 명품 의류를 가져가 화가 난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졌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여기서 중요한 가해자 남성의 선처 호소 이유는 바로 '화가 난 상태'다. 이 문구는 이와 같은 일에 빈번히 등장한다. 가해자의 감정과 상관없이 법원은 가해행위의 사회적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자 정의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해자의 ‘분노’가 정상 참작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재판부가 피해자의 고통이 크다면서도 이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은 가해자의 입장에 공감했기 때문으로밖에 볼 수 없다. 142건의 배우자 살인을 분석한 허민숙의 보고서 '살인과 젠더'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를 죽일 때(121건)는 과반수 이상이 '격노', '분노'로 살해 동기를 말하고 이는 우발적 범행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죽일 때(21건)는 재판부가 "우발적", "격노하여"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남자가 여자를 죽이면 공감하고, 여자가 남자를 죽이면 냉담한 대한민국 법원의 모습이다. 

반년 전인 2020년 7월 14일에도 제주녹색당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를 살해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에 대해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 사법부를 규탄'하는 논평을 낸 바 있다. 더불어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라는 여성들의 호소와 "사법부가 공범이다"라는 말이 사법정의를 가리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법 앞에서조차 불평등하다는 것이 현실 인식이다. 여성피해에 둔감한 사회, 여전히 '맞을 만한 이유가 있는 여자'상을 가진 사회 자체가 여성 폭력을 낳는 바탕이며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이와 같은 판단은 가해자들에게 중요한 암시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녹색당은 가부장제 남성 권력에 의한 폭력을 조장하는 판결이 더는 없기를 촉구하며 이번 판결이 가져온 사회적 약자 혐오의 문화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이 화가 난다고 나체로 차량 트렁크에 감금되어 사진을 찍히며 둔기로 맞고 싶지 않다. 

 

2021년 1월 18일
제주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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