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동원한 탁상행정 '차 없는 거리' 행사?
'걷기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와 정책을 구축하라!
오영훈 도정이 9월 28일 연북로 일대에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연북로 제주문학관부터 메가박스를 잇는 2km 되는 도로를 도민들의 품에 한시적으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행사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도민들은 걷기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를 타며 도로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오 도지사는 "자동차를 줄이지 않는 한 제주도가 추진하는 2035년 탄소 중립 실현은 불가능하다"며 차 없는 도시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다. "일상에서 자동차 없이 통학, 출근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도민 모두가 이 문제에 공감하고 참여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전기가 되길 바란다"며 도정의 도시 정책인 15분 도시까지로 의미를 확장시켰다.
제주형 '시클로비아'의 첫 단추가 되는 본 행사는 오영훈 도지사의 말만 들으면 그럴싸하다. 2035년 탄소 중립, 일상에서 자동차 없이 통학, 출근하는 도시 등 제주도민들의 삶에 필요한 지점을 짚어 행사와 정책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제주녹색당 역시 차량 중심의 도시가 아닌 사람 중심의 보행 환경을 만들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 도시는 자동차, 건축물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닐고 즐기며 활동할 수 있어야만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주도 내 등록 차량 대수는 증가 추세를 보이며, 전국에서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지자체로 꼽혔고, 그 수는 70만대를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의 탄소 중립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 자가용을 줄이는 정책은 물론 새롭게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며 도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운동 등은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취지에 대한 공감보다는 '보여 주기 행사', '탁상행정'이라는 날선 비판을 찾아보기 쉽다. 여기에 행사 인원을 위해 '공무원 동원령'이 내려졌다는말까지 나오고 있어 안팎으로 행사가 지닌 의미 전달이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오영훈 도지사는 본 행사를 설명하며 "도민들이 불편함을 느끼도록 하는 게 행사의 목표이며, 불편하지 않으면 자동차 사용이 줄어들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통해 도민들이 걷기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도민들은 걷기의 중요성을 몰라서 자가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자가용을 대체하는 대중교통, 자전거, 도보 인프라가 불편해 자가용을 타고 있는 것일까. 그가 언급한 도민에 이미 버스와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걸어다니며 자가용을 타지 않는 이들의 시선은 배제돼 있다. 도지사가 도민들이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기 전부터, 이들은 제주도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버스 감차 결정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온라인에는 민원 접수 글이 500개가 넘었고, 이 중에는 통학. 출근과 관련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자가용 없는 도민들은 이미 불편해졌다.
자전거 도로는 어떤가. 자전거 친화 도시에 대한 포부를 밝혔지만 자전거 도로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점거해 있고, 단속 역시 유명무실하다. 불법 주차된 자동차를 피하려 역주행으로 운전을 해야 하며, 노면 상태 역시 부실하다며 단절 구간도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 자전거 도로마저 대부분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환상의 자전거 도로'를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고, 도민들의 생활권과는 거리감이 있다. 제주도에서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타며 생활하는 도민들 역시 여전히 불편한 일상을 살고 있다.
'OO 친화 도시'란 말은 한 번의 이벤트 혹은 말로 생겨나는 것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영훈 도지사가 본 행사를 통해 바라는 '사람 중심의 보행 환경' 역시 한시적으로 반짝 길을 터 준다고 가능해지는 게 아니다. 최근 제주의 단편적인 상황들을 보며 오영훈 도정이 특정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를 제주의 상황에 맞춰 다각도로 고민하지 않고, 관심을 끌만한 '키워드'를 일부만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아닌가란 우려가 든다. 도민들에게 '차 없는 거리', '걷기 좋은 제주'라는 키워드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지금처럼 반짝 이벤트로는 부족하다. 탁상행정으로는 안 된다. 도민들이 차 없는 일상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생활권에서 자가용 없이 생활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는 인식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오영훈 도정은 이미 대중교통, 자전거를 이용하고 도보를 선택하며 탄소 중립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불편에 적극 공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인프라와 정책을 좀 더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불편하지 않으면 자동차 사용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민들의 불편에 적극 공감하라!
성공 사례의 키워드만 갖다 쓰지 말고, 도민들에게 '걷기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와 정책을 구축하라!
2024년 9월 25일
제주녹색당